저는 천성이 생각이 굉장히 많은 편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뭐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고 하는 말은 아니구요. 스스로도 어떤 때는 제가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정도로 생각이 많습니다.
혼자 내버려두면 몇 시간도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지낼 만큼 생각이 참 많은 그런 사람입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어느 날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어요. 잠언 4장 23절 말씀에 보면, 마음을 지키라 무릇 너가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내 마음을 지키라.
하나님께서 제가 생각을 아무렇게나 열어두고 있는 것에 대해서 경고해 주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난다 저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인 줄 몰랐습니다.
뭐 엉뚱한 생각도 하고, 공상도 하고, 그러면서 어린 시절 학생 시절을 이렇게 쭉 자라왔는데 영적으로 그것이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에 대해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이 시간에 여러분도 여러분의 마음을 한번 오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림 두 가지를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 싶은데 사영리 전도할 때 제 3원리에 이 두 그림이 나옵니다. 당신에게 속한 것은 어떤 그림입니까?
왼쪽 편에 있는 그림은 복잡합니다.
전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오른쪽 편에 있는 그림은 아주 정리정돈이 잘 되어져 있는 그림이지요 예수님이 마음의 중심이 계시면 그러면 마음과 생각이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고, 예수님이 주님이 되시지 못한 상태에서는 혼란스럽다 하는 거죠.
자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마음 상태가 혹시 왼쪽 편에 있는 그림 같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에 여러분의 방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옷장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쓰는 책상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주방에 싱크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습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내 삶도 혼란스럽구나 마음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죠. 내 주변에 있는 삶의 자리가 정리정돈이 되어져 있지 않다면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이 상태에서 무슨 말을 참 조심하셔서 됩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말해서 복을 받을 말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결정하는 거 지금 하시면 안 됩니다.
먼저 여러분의 마음이 정리정돈된 다음에 그 다음에 어떤 결정도 해야 합니다.
지금은 꼭 안 되는 것이 될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은 질서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곳은 항상 모든 일이 반듯하고 그리고 보기가 좋습니다.
근데 악한 영은 혼란의 영입니다. 마음도 그렇고 내 말도 그렇고 내 삶도 그렇고 모든 게 다 너무 어지럽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분배를 해야 합니다. 여기에 영적인 문제가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복음을 전하러 들어갔을 때 그때 성령의 역사가 굉장히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고 그 사람들이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아주 마음을 열고 반응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역사가 나타나니까 복음이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이 년 동안 말씀을 쭉 가르치는 동안 에베소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상은 다 가짜구나 그래서 그들 얼마나 일에 대해서 뜨겁게 반응을 했느냐 하면 집에 있던 모든 우상들 그리고 뭐 마술과 관련된 귀신 점치는 것과 관련된 이런 모든 책자와 물품들을 가지고 나와서 불태워 버리는데 은 5만에 해당되었다. 그랬습니다. 이 은 5만이라면 한 드라크마가 한 사람의 일당에 해당이 되는데 한 10만 원 정도쯤으로 계산하면 50억에 해당되는 물품을 불태운 겁니다. 그러니 이 에베소에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나요?
악한 영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요 자 이런 역사가 일어나니까 에베소에서 소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데메드리오라고 하는 사람이 주동이 되어서 이 은 세공업자들 이 사람들은 전부 우상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아데미 신전에 이렇게 움푹 파놓은 곳에다가 인제 우상을 거기다가 다 새겨놓고 사람들이 거기 가서 절하게 만드는 은생옥 원자인데 자기들의 생업이 이제 완전히 다 끝나게 생겼단 말입니다. 돈벌이가 다 이제 끊어지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직공들하고 자기하고 동업자들을 충동했습니다. 그래서 온 에베소에 있는 이 우상 만드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과 동료들을 죽이려고 난리가 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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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에 읽어보면 정말 사도바울과 예수 믿는 사람 다 죽일 듯한 기세였어요. 그런데 사도바울을 찾는데 사도바울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우리의 동력자였던 가요와 아리스다고 두 사람을 붙잡고 이제 극장으로 끌고 들어가는데 아데미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용문인지도 모르고 무슨 큰일이 그냥 일어난 줄 알고 사람들이 극장으로 모인 거예요. 그때 일어났던 일들 현상들이 오늘 성경에 이렇게 지적을 합니다.
28절에 사람들이 분이 가득하여 외처가로되 29절의 원성이 요란하여 32절에 사람들이 외쳐 혹 이 말을 혹은 말을 하니 34절 다 한 소리로 외쳐 두 시 동안이나 하더니, 뭐 무질서가 말로 다 할 수가 없고 혼란이 극에 달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만히 읽어 내려가면서 악령의 역사가 이거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악한 영의 역사가 정말 있습니다. 악한 영은 혼란의 영입니다. 분열의 영이고 대적하는 영이고 싸우는 영입니다. 이 에베소에 악한 영이 너무너무 강하게 역사한 거죠.
온 성이 소란했고 그리고 사도 바울과 예수 믿는 사람 다 죽일 듯한 기세가 있었는데, 그때 나타난 현상이 바로 악령의 역사 라는 겁니다. 자 분별 잘해 보셔야 합니다. 아까 처음에 여러분의 마음을 한번 돌아보시라고 그랬는데 마음이 혼란스러우신 분 예수를 믿는데도 내 마음이 혼란스러워요 내 삶이 어지러워요 그러시면 거기는 영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회와 문화가 너무 빨리 변하고 세대의 차이가 너무 심하고 경제적인 위기가 있고 그래서 혼란스러운 건가 여러분 이 혼란의 배경에는 영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내다보지 못하고 그죠 겉으로만 되어지는 것만 해결하려고 하면, 반드시 실수하게 되고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 못 했기 때문에 결코 혼란에서 해결함을 얻지 못합니다. 평생 혼란한 삶을 살다가 끝나게 되는 거지요 여러분 마음에 영적인 문제가 있다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은 아무리 내 주변에 어려운 여건이 있어도 내 마음의 평안을 주고 그리고 문제가 풀어지는 것에 대해서 내게 명확한 길을 보여줍니다. 성령의 인도함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비록 길이 아주 어려운 고난의 길을 가는 것 같아도 내 마음에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주님이 길이 사는 길이라고 가르쳐주시거든요.
근데 많은 성도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마음이 복잡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뭘까?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확신이 없고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영적인 문제가 있는 거예요. 주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교회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시험 든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교회가 예수님의 교회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악한 영예의 역사를 모르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거죠. 교회도 얼마든지 어지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악한 영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고 무슨 일을 하면은 반드시 어려움이 오는데 어떻게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혼란이 그칠 수 있을까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 말씀의 능력이 우리를 복잡한 데서 혼란스러운 데서 우리를 정리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히브리스 4장 12절 말씀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히브리스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것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용과 밑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여러분 우리 마음에 수없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의 뿌리가 셋이에요.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 하나는 악한 영이 주는 생각 하나는 내 생각 이 생각이 달라요. 여러분이 어떤 생각 다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겁니다.
악한 영이 주는 생각을 내 생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문제를 가져옵니다. 마귀가 가른 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어준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에게도 마귀가 생각으로 교묘하게 마음을 사로잡아 그를 파멸시키려고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인지 마귀가 주는 생각인지 내 생각인지 분별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많은 성도들이 너무 마음이 혼란스럽다는 거예요. 어떤 것이 주님이 원하는 길인지를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올 때 그때 말씀이 예리한 수술용 칼과 같아서 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말 가슴이 찔러 쪼 갠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지금 내 마음속에 있는 이 생각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인지 마귀가 주는 생각인지 내 생각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분별이 되고, 깨달아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삶이 혼란스러우신 분이 계십니까? 생각이 지금 복잡하십니까? 성경을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세요. 주님 대하듯이 말씀을 대하십시오. 여러분의 말씀을 읽어 내려가는 중에 여러분이 그렇게 복잡하다고 생각했던 여러분의 마음이 정리가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마귀는 내게 이렇게 충동하고 있구나 벌써 오래됐습니다만 한강 다리가 무너진 성수대교 무너지고 삼풍백화점 백화점이 다 무너지는 일이 있었죠. 세계적으로 한국이 창피를 톡톡히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의 배후에 기독교인들도 많이 관여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는 기독교인이 관여 안 된 영역이 없어요. 다리 하나 놓는데도 백화점 건물 하나 짓는데도 다 속에 건축주라든지. 시공자라든지. 인부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돼 있습니다. 정직하게 일하라 설계도대로 일하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게 돼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닫지 못하고 무시하는 일이 문제가 되는 거죠.
어떻게 정직을 일할 수 있어 그래 가지고 어떻게 돈 벌어 다 그렇게 안 하는데 나만 유난히 그렇게 할 필요가 뭐 있어 이게 마귀가 주는 소리인 줄 모르고 생각을 품은 거예요. 그러니 다리를 지어도 무너지는 다리를 짓고 백화점을 지어도 무너지는 백화점을 만든 거죠. 그 다리에서 백화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그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다 정직하게만 살 수 있어 이렇게 우리 신령이 분별이 되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야 순종 안 할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마귀가 주는 말인 줄 알고야 따라갈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분별이 안 되니까. 예수를 믿고도 실제로는 마귀 종노를 하고 산단 말입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다 주님이 주시는 생각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제가 캐나다에 한 번 집회를 갔다가 어느 권사님 눈물에 고백을 들어서 들었습니다. 권사님 참 열심히 기도 많이 하고 교회 충성하시던 권사님인데 마음에 상처가 있으시더라 아들이 지붕을 고치려고 올라갔다가 그만 사고로 죽었어요. 며느리가 남편 잃은 며느리가 아버지 잃은 손주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생겼습니다.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안 했지만, 여전히 교회에 열심히 섬기고 새벽기도 문을 이 권사님이 열으셔 여셨으니까.
그렇게 교회의 기도대장이시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여전히 잘 믿으시지만 마음에는 언제부턴지 기쁨도 감사도 없고 원망이 생겼어요. 하나님 어째 저희 집에 이런 일을 주실 겁니까? 그렇게 오래 지내셨습니다. 네 부흥회가 열린 거예요. 부흥회 때 말씀을 듣다가 천국 소망에 대한 말씀을 듣는 날입니다. 늘 들었던 말씀인 것도 같은데, 그날 말씀이 권사님의 마음에 심령에 들어왔어요. 하나님이 계시고 이 땅이 전부가 아니고 영원한 천국이 있고 그곳에서 우리는 영생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을 듣는 중에 권사님의 속마음이 빛 가운데 드러났어요.
아들 죽은 것 때문에 하나님 원망하고 마음 문을 닫아버리고 기도도 다 겉으로 형식으로만 하고 기쁨 없는 예배드리고 지냈던 권사님의 심령에 그 혼란스러웠던 것이 빚 가운데 다 드러났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이 땅이 전부가 아니고 영생이 있고 천국이 있고 내 아들 왜 그렇게 사고로 죽었나 생각만 했는데 지금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비로소 눈이 열렸어요. 그리고는 권사님이 가슴을 끌어안고 우시는 거예요. 하나님 원망하고 감사 없이 살았던 것에 대한 회개 그리고 여전히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시고 죽은 아들 영원한 천국에 있다는 것에 대한 너무나 놀라운 확신이 권사님을 견딜 수 없이 울게 만들더라고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갈등 혼란 방황하는 것에 대해서 답을 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렇게 뻔연히 있는데도 이 말씀을 통해서 삶의 인도함을 받고 문제를 해결함 받지 못하는 성도들이 너무 안타까운 거죠. 부천에 창조교회라는 교회가 있는데, 담임 목사님 심주일 목사님이십니다. 이분은 북한군 우리 식으로 말하면 중령 계급에 해당되는 북한 정치 장교였어요. 평양을 호위하는 평양 방어부대 정치 장교였다가 1998년 3월 17일 압록강을 건너서 탈북을 해서 중국에서 1년을 지내다가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신학교를 하고 목사가 된 분입니다. 그분은 출신 성분이 북한에서는 제일 최고의 성분이에요.
6.25 전쟁 때 그 아버지가 미군과 국권에 의해서 죽고 형은 행방불명이 됐습니다. 북한에서는 최고의 신분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 졸업하고 그리고 군의 정치장교가 되고 그는 주체 사상의 신봉자고 그리고 김일성의 열렬한 추동자였습니다. 그런 공산주의자도 현실을 보고 나니까 마음이 흔들리더라는 거예요. 김정일 체제가 되고 북한의 극심한 가난이 오고 계속되는 흉년이 오고 그리고는 정말 전 북한의 동포들이 거지 같은 삶을 살게 되는 현실을 보면서 이게 도대체 뭔가 이런 마음의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마음이 방황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때 친구가 그도 북한에서는 상당히 고위 중에 있는 사람인데 절친한 친구가 정말 그런 친구니까 그랬겠지요. 중국을 다녀오는 길에 술도 사오고 담배도 사오고 그러면서 성경을 한 권을 가지고 주드라는 거죠. 이거는 누구에게도 보여주면 안 되지만 근데 한번 읽어봐. 그러고 주드라는 거예요. 다른 사람 같으면 신고해야 되지만 그래도 절친한 친구가 자기를 믿고 준 건데 그래서 비밀 아닌 비밀이 되어서 숨기고 성경을 호기심 반 읽기 시작을 한 겁니다. 성경을 읽어 내려가다가 깜짝 놀랐어요. 주체 사상이 김일성이 만든 것인 줄 알았더니, 성경에 다 나오는 내용을 베낀 거예요. 성경에 있는 내용을 다 읽어보니까, 주체 사상의 원뿌리가 성경에서 나올 거예요.
성경에 있는 것들을 여기저기서 다 짜집기 해서 만든 거구나 그리고 주체 사상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 모순이 있었는데, 성경을 읽어보니까, 답이 다 여기 나와요. 이게 도대체 뭐냐 성경은 읽기는 읽어도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너무 많았는데 밤 한 시에서 5시 사이에 제주 극동방송에서 보내는 북한을 향한 방송에 목사님들의 설교 방송을 들으면서 성경 공부를 해 가기 시작을 한 겁니다. 밤에 이불 뒤집어쓰고 한 시부터 닷새 사이에 그때가 주파수가 제일 잘 잡히는 시간 설교 들으면서 밤새워 성경을 읽었어요. 설교 끝나고 난 다음에 찬송가가 나오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노래인데도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지금까지 지내온 것 그런 찬송들을 찬송 들으면서 외웠다고 그랬어요.
그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북한이 완전히 거진 나라구나 깨닫고 그리고 이제 탈북을 결심을 하게 되고 탈북하고 그리고 지금 목사가 됐습니다. 철저한 공산주의자 그도 마음에는 사실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것이 거짓 진리기 때문이죠. 그 마음을 무엇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길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어떻게 명확하게 될 수 있나요? 하나님의 말씀이더라 말입니다. 사도 바우리 에베소에서 이 년이 넘는 동안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제자 훈련을 한 거죠. 사도바울이 본래부터 그랬던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순회전도자예요. 어디든지 가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모든 죄 저주에서 건짐을 받고 하나는 자녀가 됩니다.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예수 믿은 사람들 그들에게 세례 주고 그리고 또 다른 도시에 가서 예수를 믿으십시오. 얼마나 전도할 때가 많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전도하던 분이에요. 그런데 이 차 전도 여행 중에 그렇게 복음을 전하다가 사도 바울이 마음에 이것으로는 부족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전도에 대한 심각한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어요. 우리가 이미 다 말씀을 보았다시피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위기가 왔습니다. 이 고린도에 왔을 때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는 복음을 전하고 금방 떠나지 않고 1년 6개월 동안 말씀을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이 생각하기에 말씀의 기초를 세워 주어야 말씀의 기초를 세워주어야 믿음이 흔들리지 않겠구나 그래서 복음을 전해서 예수를 믿은 제자들을 다시 1년 6개월 동안 말씀 훈련을 합니다. 제자 훈련을 한 거죠. 그러고 나니까 고린도 교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큰 교회가 세워졌어요. 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사두바울은 이것이 중요하구나 깨달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에베소에 와서도 3개월 동안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회당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 예수를 믿으시라고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고 영접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배척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믿고 영접한 사람들 제자들을 따로 불러서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서 동안을 그들에게 날마다 성경을 가르칩니다. 제자훈련을 한 거죠.
그리고 오늘 이 본문의 사건이 벌어진 거예요. 여러분 말씀 훈련을 받는 게 왜 중요한가. 에베소 성도들이 말씀 훈련 받고 난 다음에 이런 위기를 대처하는 자세가 깜짝 놀랄 정도로 성숙해 있습니다. 실제 상황을 아마 우리가 생각해보면 다 죽었다고 생각할 상황입니다. 사도바울도 이제 죽겠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죽겠구나 그렇게 살기 등등 했어요.
근대 에피소유 교회 성도들이 그와 같은 상황에서 얼마나 차분하게 문제를 대처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잠잠히 기다렸는지 사두바울이 가요와 그리고 아리스다고가 자기를 대신해서 극장에 끌려 들어갈 때 가슴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래서 사두바울은 죽어도 내가 죽겠다고 그러고는 자기가 극장에 들어가서 내가 여기 있다고 그렇게 하려고 했어요. 사도바울의 솔직한 인간적인 심정이 그랬단 말입니다. 앱에서 교우들이 붙들어요. 아니 흥분하면 붙들어 줄 사람이 사도 바울이어야 하잖아요. 사도 바울이 흥분했는데 앱에서 교우들이 붙들어요.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립시다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상황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에페소드 교우들은 가운데서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잠잠히 기다리는데 깜짝 놀랄 만큼 상황은 가라앉아 버립니다. 극장에 모여서 소리소리 지르는데 서로들이 왜 모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두 시간 동안 소리소리 지르면서 아덴의 신을 소리 부르 소리쳐 부르고 그리고 지나는 이 사람들이 한순간에 다 흩어져 버린 거예요. 서기장이 그 사람들에게 지금 여러분들은 불법 집회에 참석한 겁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계속 이렇게 소리 지르면 여러분들은 다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싹 가버렸어요.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버리네,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버리리라곤 상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에베소기의 소동이 그렇게 끝났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받은 사람은 어떤 상황이 밀려올 때 두려움으로 염려로 또 혼란스러움으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두려움 염려 정말 십자가에 처리되었다는 걸 본인이 알아요. 두렵지 않으니까. 염려가 안 되니까.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으니까.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이 부모 유명한 사람에게는 죽음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거란 말입니다. 말씀 훈련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를 믿으셔도 그저 복음 듣고 예수 믿는 정도의 그런 분도 있으실 거예요.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주님이시다 예수 믿으면 죄사한 받는다. 그래서 복음 듣고 지금까지 예수 믿으시는 분도 있으실 거예요.
주일 교회 와서 설교 듣는 것 가지고서 믿음 지키고 계시는 분도 있으실 거예요. 근데 아마 그런 분들은 틀림없이 신앙생활도 고민이 많으실 겁니다.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건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마음도 복잡하고 예수를 믿어도 삶의 증거가 없는 거죠. 말씀 훈련을 꼭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 세 가족들에게만 하는 거 아니에요. 1대1 양육이 여러분도 나는 안보 한 번도 제대로 말씀 훈련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속해 여러분 주변에 여러분을 섬교 주실 분들이 많습니다. 말씀 훈련을 제자훈련 또 선택과정 여러분 정말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의 차원이 달라진다니까요? 영적인 분별이 생깁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두 가지 고민이 있었어요. 첫째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이들이 왜 시험도 그들이 일으킬까 하는 거예요. 그 교회를 향한 열심을 생각하면 교회를 시험 들게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교회에 열심히 있는 분들이 또 다 교회 시험을 일으켜요 또 하나 성도들을 위해서 그렇게 간절히 축복 기도 해 드렸으면 뭐 삶의 형편이 달라지는 게 보여야 되잖아요. 그렇게 간절히 복을 빌어드렸는데도 성도들의 문제가 해결 안 되고 여전히 어려운 것은 이건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실까 목회하면서 제게 큰 고민이었습니다. 근데 알겠더라고요.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훈련이 없이 그렇게 예수를 믿으니까.
하나님도 어떻게 못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그저 열심만 가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교회를 더 어렵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뭔지 모르고 그저 내 생각 내 열심만 가지면 나는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했는데, 결과는 항상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복을 빌어드렸는데 그럼 하나님이 응답하시죠. 그래서 하나님이 축복의 길 살길을 인도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분별을 못 받는 거예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힘들다 어렵다는 생각만 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살길도 열어주시고 복을 받게 해 주시려고 하시는데도 믿음도 없고 순종함도 없으니 하나님도 어떻게 역사를 못하시는 거죠.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으시면 반드시 말씀 훈련을 같이 받으셔야 됩니다.
주님 제 귀에 말씀해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읽으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말씀을 성경에 다 기록하셨어요. 하나님은 아주 급박한 때는 급박하고 어떤 때는 아주 신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준비된 사람 훈련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참 놀라운 방법으로 말씀하시고 그를 인도하십니다. 지난 목요일에 저희 교회에서 기도 24 36 5주님 다시 오심을 위해서 24시간 365일 기도하는 이들이 일곱 번째 7년 동안을 했어요. 7년 동안을 대단한 일이죠.
이 교회에서 감사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완주 감사 예배를 그런데 그때 첫 메세지를 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기도 2 4 3 6 5 7차 완주 예배 감사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첫 번째 메세지를 전하는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어요. 그것은 지금도 핍박받는 교회들이 많은데 우리가 감사 예방만 드릴 수 있을까? 핍박받는 교회가 여전히 있는데, 북한교회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얼마나 핍박받는 교회가 전 세계에 많은데 우리가 기도 끝냈다고 감사예배 이게 말이 되나 왜 특별기도회나 하면 모를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은 살아계신데, 어떻게 핍박받는 교회가 여전히 있습니까?
근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 마음이 있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말씀으로 정리해 주셨어요. 이사야 59장 1절 말씀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오.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요아닐스 3장 13절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디모데오서 3장 12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마태복음 5장 11절 12절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인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니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나니라 박해받는 교회가 여전히 있고 박해받는 성도들이 있지만 그것도 하나님께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라고 하시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감사절 감사 예배드릴 메시지를 정리할 수가 있었어요.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혼란스러운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혼란스러워하고 답답해할 때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우리에게 가르치세요. 저는 목사가 되고 난 다음에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뭐 말재주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뭐 인물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또 무슨 이 말 이 재담 또 공부를 많이 해서 학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무슨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죠 저는 설교자로서 개인적으로 너무 부족한 게 많다 하나님이 이왕 설교자로 쓰실 거면 제게 무슨 제주도 재능도 이렇게 주셔서 정말 좀 한번 멋있게 이렇게 설교자로 쓰시지 이런 생각이 늘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에 대해서 제게 말씀으로 명확하게 주의 뜻을 보여주셨어요. 고린도전서 1장 29절 말씀입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십니라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제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고 나는 설교자로서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를 자랑하고자 하는 근본 동기 때문이야라는 것에 대해서 깨닫게 하시고는 깜짝 놀랐어요. 저는 그저 설교 잘하려고 한다고 생각만 했어요. 근데 제 내면의 동기 속에는 제가 이것도 있으면 설교를 더 잘할 텐데 나에게 저런 능력이 있으면 설교를 더 잘할 텐데 하는 생각 속에 사람들에게 평가받고 저를 자랑하고자 하는 제 마음의 동기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실 때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자랑하는 것을 너무너무 싫어하신다 설교하는 사람도 자신이 설교한 것으로 인해서 마음으로 자랑하는 마음 가지면 하나님은 그를 버리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부러 약한 자 미련한 자 천한 거 얻는 거 멸시받는 것을 택하여 쓰신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제 마음에 답이 왔어요. 하나님 설교자로서 자격이 하나님 원하시는 건 뭔가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너무 간단해요.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십자가에 죽었고 예수님이 우리 생명 되시다 요 이야기만 할 수 있으면 설교자 된다는 거예요. 제가 생각해보니까, 인물은 별로고 공부도 별로 못 했지만, 이야기하는 거는 아무것도 어려움이 없더라고요.
어떤 때는 얼굴에 뭐가 자꾸 나서 신경이 쓰이더라고. 근데 얼굴에 뭐 나는 거 아무 상관이 없더라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었고 예수님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어지간하면 여러분도 다 아실 수 있어요. 있을 거예요. 그것만 똑바로 전할 수 있으면 우리 주님 앞에서는 설교자로서 완벽하신 완벽한 덧붙이지 마 덧붙이는 게 문제야 그러셨어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설교자가 아니시니까 여러분들에게 있어선 무슨 조건이 하나 필요할까 하나님이 쓰시는 조건 주님이 하셨습니다. 이 말만 할 수 있으면 돼요.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셨잖아. 다 그죠 그러니깐 어디서든지 누구에든지 주님이 하셨습니다. 이렇게만 말할 수 있는 자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시는 조건이에요.
진심으로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에는 모든 혼란을 다 정리해 놓으시더라고요. 지난 목요일 우리 감리교회 새 신학대학원의 제자훈련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전도사님이 간증을 하셨어요. 제자훈련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평생 원치 않는 곳에서 혼자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가난하여 아무것도 없이 살아야 할지라도 예수님 한 분이면 자매님 충분하겠습니까? 그때 그렇게 물으시는 목사님이 너무 야박하다 싶었습니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 훈련을 마치는 이 순간 제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저는 예수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신부로서 이렇게 서 있습니다.
목사님이 오늘 다시 한번 그렇게 물으신다면 단 1초도 안 걸리고 예 정말 눈물이 핑 돌더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놀라운 것인가? 어떻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종을 이렇게 마음을 바꿔 놓을 수 있어요. 성도 여러분 마음이 혼란스럽다면 말씀만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정리해 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옳은 일 같아도 말씀으로 답을 얻기 전까지는 아직도 결론 내리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막연하게 말씀이 임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말씀 훈련을 받으십시오. 새 가족 양육 제자 훈련 선택 과정 다 소중한 기회입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이 신자가 될 뿐만 아니고 제자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우리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 제 마음이 복잡합니다. 제 마음이 너무 흔들립니다. 주님 어디로 가야 될지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주님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으로 주님 제게 오시옵소서 제 마음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통성으로 기대합시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시고 그동안에 설교 중에 좋으셨던 분들은 퍽사 상처받았을까? 봐 걱정이 듭니다. 네 설교 중에 졸면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위협적인 말씀처럼 혹시 받아들이지는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목사님들 중에 이 성경 본문을 가지고 설교 중에 졸면 안 된다. 죽을 수도 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긴 합니다.
그러나 평신도들도 할 말이 많으신 것 같아요. 네 오죽하면 졸았겠냐 죽을 정도로 졸았겠냐 졸도록 졸리는 설교하는 것은 죄악이다. 이런 근거로 또 이 성경을 인용하는 분들도 있는 걸 보았습니다. 네 오늘 이 본문의 말씀에 핵심 주제는 사도 바울이 죽은 유두골을 살렸다든지 또는 설교 중에 졸면 죽는 수도 있다든지 또는 졸리드로 설교하는 것은 죄악이라든지. 뭐 이런 말씀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사도바울이 좀 설교를 길게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9절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 못했다. 이렇게 표현한 걸 보면 사도 바울이 평소에 하던 설교보다 이날 좀 길게 설교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하고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제자 훈련을 해서 주님의 제자들을 잘 길러낸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이제 떠났습니다. 마교 전해를 거쳐서 이제 드루와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한 주간 동안을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했는데 이제 내일이면 떠나는 날 그날이 주일이 되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여기 떡을 때며라고 그랬는데 성찬식을 했다는 거죠. 성찬식이란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성경에 떡을 뗀다는 표현이 나오면 그날 주일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했다. 그런 뜻입니다.
그날 주일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말씀을 그들에게 이제 전하는데 내일이면 이제 떠나게 되고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라 간절한 마음으로 한 말씀이라도 더 드리려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설교가 길어졌던 모양입니다. 근데 그럴 때 큰 사고가 생긴 겁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는 거죠. 누가가 사도 행전을 기록했는데 누가는 의사였던 사람입니다. 누가가 죽었다고 썼어요. 에 사도바울이 성찬 예배를 집례하다가 내려가게 됩니다. 내려가서 보니까, 사람이 죽어있는 거지요 사도바울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유두고에게 몸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끌어안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두고를 살려주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사두바울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생명이 아직도 몸에 있습니다. 그리고 올라가서 이제 예배 를 마무리를 했습니다. 유두군은 살았지요 자 이 사건이 왜 기록을 되어져 있을까요? 사도행전 속에 사도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졸려서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 사건을 성경은 왜 기록해 둔 것일까요? 그것은 그때 당시에 사도행전 당시에 말씀의 은혜가 얼마나 컸나 하는 것에 대해서 이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밤이 새도록 듣고 싶은 말씀이 있었다는 밤이 새도록 전할 그런 말씀이 있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밤새도록 찬송 불러보고 밤새도록 기도하고, 밤새도록 말씀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사도행전 때는 그랬다는 거예요.
4절 말씀에 보면, 사두바울이 이제 예루살렘으로 갈 때 많은 사람이 사도바울을 따라서 동행을 하게 됩니다. 베리야 사람 프로의 아들 소바도와 아살로니카 사람 아리스토 가오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요와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 모라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제 사도 알고 동행하게 됩니다. 말은 이 말씀 전하는 사역에 자기의 남은 인생을 다 걸었다는 거죠. 말씀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런 사람들이 일어났을까요? 요즘에도 사도바울의 전도 여행을 따라서 성지순례를 갑니다. 그러나 비행기 타고 가서 그리고 버스 타고 돌아다닙니다. 좋은 호텔에 가서 좋은 음식 먹으면서 그것도 한 열흘 정도 여행을 하는데 그것도 힘들다고들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전도 여행 다닐 때는 그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걸어서 다녔어요. 강도의 위험 감옥에도 들어가고 매 맞고 굶기도 하고, 그런 전도 여행길을 따라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말씀이 얼마나 얼마나 좋았으면 말씀 계속 듣고 싶고 말씀 전하는 일에 내가 나를 헌신하고 싶다고 그렇게 사람들이 일어났어요. 성도 여러분 유두고 이야기 핵심이 뭡니까? 유두고가 설교 듣다가 졸아서 죽었다 이야기가 핵심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말씀을 듣고 하던 그런 일을 말해주려고 하는 겁니다. 그때는 한번 말씀을 들으면 밤을 샜다는 거죠. 사실 예배가 끝났습니다. 성찬 예배 끝났어요. 그런데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더 이야기를 했다고 그랬습니다.
말은 예배가 끝났는데 집에 안 가는 거예요. 내일이면 사도바오로는 이제 예루살렘을 향해 떠납니다. 말씀을 조금 더 해주세요. 설교 조금 더 해주세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더 설교하고 밤이 새도록 그렇게 말씀을 전했다는 거죠.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부흥이 일어나면 설교를 더 듣고 싶어져요 어느 권사님이 당신이 참 은혜받을 때 또 교회가 정말 부흥될 때 그때 담임 목사님의 설교가 얼마나 꿀송이처럼 단지 설교 끝날 때 시간에 되면은 고통스럽다는 겁니다. 끝날까 봐 이제 설교 끝날 때가 다 됐네 아우 이러면 안 되는데 더 해주셔야 되는데 그랬다는 거예요. 아마 이해 안 되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여러분 연속극 볼 때 그래요. 안 그래요. 어우 이거 정말 끝날 때가 다 돼 가네 연속극 볼 때 다 똑같은 마음이 설교 들을 때 더 간절해지는 것이 바로 내 심령의 부흥이 올 때란 말입니다. 부흥의 기록을 읽어보면 10시간 설교를 했던 때도 있었어요. 실제로 중국에 가서 말씀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참 신기한 것이 무조건 길게 해달라는 겁니다.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죠. 똑같은 내용 계속해도 좋으리 그러니까 한 설교를 한 시간 정도 분량의 설교를 준비했다. 그러면 하고 고대로 또 한 번 더 해도 좋으니까. 한 두 시간 세 시간 해달라는 거예요. 우리 한국은 내용과 상관없이 무조건 짧게 해달라는데 어떻게 그렇게 다르지요 심령의 부흥이 다른 겁니다.
바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좋은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 전태를 바꾸고 살리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기 시작하면 밤새고 들어도 좋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여러분은 정말 밤새고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러면 여러분들도 할 말이 있겠지요. 목사님도 사도바울처럼 한번 설교해 봐요. 밤새워도 듣지 실제로 제가 설교에 대해서 참 열등감이 있고 또 마음의 간절한 소원이 있었던 것이 나도 한번 설교를 재미있게 있게 할 수는 없을까? 제가 워낙 사람이 재미없는 사람이라 설교도 뭘 재미있게 잘 못해요. 근데 설교를 재미있게 하시는 목사님들도 계시더라고요.
보기에도 부러워요 야 나도 한번 목사님처럼 저렇게 하면 얼마나 교인들이 행복해할까 그래서 재주도 없으면서도 설교 재미있게 한번 해보려고 쓸데없이 유모집 엄청 뒤져봤어요. 세상 유머 설교에 인용하니까 더 썰렁해지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하여튼 설교 재미있게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의 욕구가 제게 있었어요. 말은 지금은 없다. 말이죠. 지금은 점에 대해서 하나님이 답을 주셨어요. 제가 설교를 재미있게 하게 됐다는 게 아니고 설교 재미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아무 쓸데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정확하게 말씀을 전하느냐 그것이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이고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만 전할 수 있다. 그다음에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겁니다. 설교가 재미없어도 설교의 역사가 있어요.
믿음은 말씀을 들으면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증거되었느냐가 사실상 말씀의 핵심입니다. 설교자는 그것만 하면 돼요. 혹시 재미없어도 돼요. 여러분 음식도 말입니다. 맛으로 먹는 음식이 있습니다. 저 아주 음식이 맛이 좋아 그런 식당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죠. 이왕 밥 먹을 거면 맛있게 하는 집에 가서 먹고 싶잖아요. 그러나 맛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건강은 안 좋아요. 아무리 음식점 맛이 좋아도 매일 음식을 먹으면 몸에 안 좋습니다. 맛을 내게 하기 위해서 이 영양소 문제를 고려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먹는 밥이 음식점 맛보다 그렇게 맛은 없어도 집에서 먹는 밥이 몸에 좋은 이유는 그것은 영양소를 더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입에 별로 맛은 없어도 영양가 있는 음식이 골고루 있는 집에서 먹는 밥이 좋듯이 설교도 재미있게 설교할 수 있는 목사님은 은사를 써야 하지요 그죠 저도 재미있게 설교하는 목사님 계시면 우리 교회 강단에 많이 초청하고 싶어요. 교우들에게 말씀 듣는 재미도 들려드리고 싶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제 마음의 소원은 설교 재미있게 하기보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온전히 전해드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더 원하시고, 또 그것이 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사도 바울이 설교가 재미있었겠어요. 재미있었으면 유두고가 떨어져 죽었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이 정말 드로와의 성도들에게 유익했겠지만, 솔직히 좀 졸렸다 말이지요 그러니까 참다가 떨어져 죽은 일이 생겼다 말이죠. 미국의 목사님 설교 잘하시는 목사님 중에 척 스미스 목사님이라고 계십니다. 목사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근데 이 목사님이 설교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목회를 포기하신 분입니다. 한 주간 내내 너무너무 괴로운 겁니다. 주일 설교 준비를 하는 게 너무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애를 써서 설교 준비했는데도 설교하고 나면 그러면 신동지가 아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다는 거죠.
빌리그리한 목사님이 성경책을 한 손에 들고 그리고 회중들을 보면서 전도 설교하는 게 유명해서 자기도 한번 그렇게 해 봐야 되겠다. 그래서 무선 마이크까지 이렇게 구입을 해 가지고 빌리그리아 목사님 흉내를 냈는데 더 좌절만 오더라는 거예요. 나는 은사가 없구나 그래서 목회를 그만뒀습니다. 설교도 못하는 목사가 무슨 목회를 해요. 자 설교 안 하고 목계 그만두고 나니까 그렇게 홀가분하더랩니다. 근데 성경을 읽고 싶더래요. 설교 준비할 때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고생했던 성경이었는데. 설교 안 한다고 생각하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한번 성경 읽어보고 싶더래요. 그래서 창세기부터 성경을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가기 시작을 했답니다.
은혜받은 구절이 있으면 밑줄을 긋고 또 깨달아지는 것이 있으면 메모도 하고, 설교할 부담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설교를 부담없이 성경을 읽었는데 너무너무 깨달아지는 감동이 많아서 이제 사모님에게 이야기를 했대요 여보 내가 성경 읽다가 이런 부분에서 이런 은혜를 받았어. 사모님이 듣고 보니까, 혼자 듣기 너무 아깝더래 그래서 인제 몇 분 주변에 있는 분을 불러다가 한 주일에 한 번씩 은혜 받은 내용을 이렇게 듣는 시간을 가졌는데 한 40명 정도 모였을 때 우리 교회를 개척합시다. 석수민수 목사님 다시 설교를 하게 됐어요. 그러나 전에처럼 설교를 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지 않고 그저 성경을 쭉 읽어내려 가다가 은혜 받은 구절들을 모아서 주일에 설교하는 식으로 했답니다. 그것이 바로 강의 설교의 원조입니다.
척 스미스 목사님의 유명한 강해 설교 그날 성경을 꾸준히 읽어 내려가면서 은혜 받은 것을 정리해서 설교하는 식이죠. 미국의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어요. 2004년도 통계지만 미국의 제일 큰 교회 25 교회 중에 15 교회가 척스미스 목사님의 영향을 받은 교회입니다. 석스미스 목사님 안에 이런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지요 말씀을 보는 눈이 뜨이면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말씀이 사람 인생을 바꾸고 그리고 교회를 뒤바꿔 놓아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사람을 바꾸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진짜 사람이 거듭나요? 성질대로 예수 믿고 계신 분 계십니까? 예수 제대로 안 믿고 계신 거예요. 예수를 진짜 믿으면 사람이 바뀌어 바낍니다. 그럼 어떻게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말씀이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목사 아들로 자라면서 기독교에 대해서는 많이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는 못했어요. 제가 1984년 4월에 예수님을 9주로 영접하는 회심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체험으로 내 인생은 다 바뀔 줄 알았어요. 다시는 옛날처럼 더 이상 살게 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뜨거운 체험은 금방 감동이 지나가 버립니다. 삶의 진정한 변화는 체험만 가지고는 안 되더라구요. 제 삶의 변화는 제가 제자 훈련을 하면서 제가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려고 자신이 말씀 앞에 서면서 이루어졌어요. 사람을 바꾸는 것은 말씀이었어요. 그리고 성도들을 제자훈련 해보니까, 성도들도 말씀으로 변화되는 거예요.
예수님과 행복한 동행이라는 책 서문에도 제가 썼습니다만 제자 훈련하면서 얼마나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속에 들어가니까 말씀으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세워지고 나니까 성격도 바뀌고 삶도 바뀌더라 말입니다. 저는 목회를 시작할 때 제가 목회를 잘하려면 그러면 도시에서 목회를 해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왕이면 사람 많은 데서 목회를 해야 목회 성공을 할 거 아니겠습니까? 또 하나 예배당 건물이 지어진 교회 가서 목회를 해대했구나 아버님 목회하실 때 어려서부터 보니까, 이 예배당 건물이 있는 교회와 전세로 사는 교회는 이건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내가 목회를 할 때 꼭 예배당 건물이 있는데, 가야 되겠구나. 이렇게 빚이 많은 데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때는 그리고 이왕이면 교인이 많은 좋은 교인들이 많은 교회에 가서 목회를 해야 되겠구나. 교인이 어떠냐에 따라서 목회가 또 엄청나게 달라지더라고요. 그게 제가 처음 목회할 때 가지고 있던 생각입니다. 도시가 되어야 되고, 예배당 건물이 있어야 되고 좋은 교인들이 있어야 된다. 근데 그것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어요. 제가 진짜를 몰랐기 때문에 그때는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거지요 제가 사도행전을 읽다가 사도바울을 보니까, 사도바울은 물론 도시를 중심으로 다니기는 했지만, 사도바울은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아무 근거가 없었어요.
예배당이라고 하는 에베소에서 한 3년 동안 그렇게 말씀 운동을 하고 교인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거기서 목회하다가 은퇴하는 거지요 왜 떠나기는 왜 떠납니까 사도바우로는 그냥 과감하게 떠나고 또 다른 도시로 전도하러 나갑니다. 그는 로마로 가야 했다고 생각했어요. 결국은 땅끝인 스페인까지 가려고 했습니다. 그게 사도바울의 열정이었어요. 사도바울은 길거리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감옥에도 수도 없이 들어갔어요. 그게 사도 바울의 삶이었어요. 그러나 사도 바울의 삶에는 역사가 있었어요. 기적이 있었어요. 빌리포 감옥에 들어가면 빌리포의 감옥에 지진이 일어났어요.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는 시위대 로마의 최정의 9대 시위대가 뒤집어졌어요. 핍박이 올 때 오히려 더 부흥이 일어났어요.
그게 무엇 때문이죠. 사도바울이 증거하는 복음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사도행전 읽다가 예배당이 있어야 되겠다. 도시에서 목회해야 되겠다. 교인이 좋아야 되겠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니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복음의 말씀 그게 진짜구나 복음의 말씀이 있다면 어디서 목회하든지 상관없어요.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거니까 사람이 변하고 교회가 바뀌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니까 말씀이 역사를 이루어낸다 말입니다. 그리고 제자훈련에 눈을 뜬 거예요. 말씀이면 되는 거구나 외 다른 조건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거구나 성도 여러분도 똑같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 손에 있잖아요. 그죠 여러분의 손에 쥐어져 있는 이 말씀이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손으로만 들고 다니는 거예요. 말씀을 읽지를 않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려고 시간을 내지를 않는 거예요. 우리가 말씀을 통해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말씀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을 배우는 일에 시간을 내지 않으니까. 사도 바울이 들어와 있는 겨우들에게 그렇게 밤을 꼴딱 새면서까지 한 말씀이라도 더 그들에게 전해주려고 했던 이유가 뭘까요? 들어와 있는 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요? 예수님 어떻게 압니까 말씀을 통해 만납니다.
사도바울은 사도바울이 들어와의 교인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예수님이 소용이 있는 거지요 그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요? 말씀을 통해 만나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밤을 꼴딱 새면서까지 말씀 전해주고 떠나려고 하고 저희 교회에서 제자 훈련을 하는 목적이 뭔지 아십니까? 제자 훈련하는 목적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친밀한 교제를 갖게 해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어떤 분이 그런 걱정을 하더라고요. 그러면 목사가 소용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교인들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면 목사가 소용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목사가 소용이 없는 것이 목적이에요. 여러분 대부분의 성도들이 말씀에 은혜를 설교를 통해서 듣습니다.
실제로 성경 말씀을 보면서 묵상하고 말씀을 배우면서 거기서 은혜를 받는 분들이 지극히 적어요. 대부분 성도들이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릴 때 설교 들으면서 겨우 은혜를 받아요. 설교 들으면서 은혜 받는 것 가지고 세상 못 이깁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세상에 부딪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때마다 다 목사가 가서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드리고 여러분을 은혜받게 해드리려고 그러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사는 삶에 바로 현장에서 바로 시간에 여러분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말씀을 통해서 알고 말씀을 통해 인도를 받을 수 있어야 비로소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실 것 아니겠어요.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묘지에 가면 봄이 되면 공원에 있는 직원들이 얼어 죽은 굶어 죽은 곰들의 시체를 이렇게 치우는 일 때문에 아주 어려움을 겪는다고 그럽니다. 왜 곰들이 그렇게 굶어 죽지요 그 공원에 오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는데 그만 익숙해져서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스스로가 양식을 취하는 그런 기능을 다 잃어버린 거지요 그래서 공원에 들어갈 때 전단을 받습니다. 곰에게 먹이를 던져주지 마십시오.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이와 같은 상태에 빠져 있어요. 그저 던져주는 말씀 아니면은 스스로가 말씀을 보지를 못하는 겁니다. 스스로가 말씀 묵상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면 세상에 나가서 다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거예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말씀을 손에 들고도 말씀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자는 겁니다. 어느 목사님이 환상을 보았는데 목사님의 설교하시는데 회중들의 상태를 보게 된 거예요. 깜짝 놀랐답니다. 그렇게 많은 교인들이 설교 중에 조는 것을 목사님은 환상을 보기 전에는 몰랐대요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설교 중의 시계를 보고 주보를 들춰보고 창문 바깥을 보고 생각은 완전히 딴 데 가 있는 겁니다. 심지어는 뒷자리에서 설교 중에도 왔다 갔다 하는 교인들도 있다는 것을 환상 중에서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근데 하나님이 또 다른 환상을 보여주셨어요.
문이 열리는데 지옥을 보는 거예요. 사람들이 지옥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그런데 지옥에서 불 속에서 고통당하던 사람들이 목사인 자신을 알아보고는 자기를 향하여 팍 소리를 지르더래 그 입술의 모양을 보니까,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 목사님 말씀을 좀 전해주세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고 구원의 복음을 말씀을 통해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그래서 지옥에서 구원을 받고 싶다는 거죠. 그걸 지옥에 가서 깨달은 거죠.
보고 우리에게 좀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는데 그래서 목사님이 안타까워서 지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치면서 복음을 전해 주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못 듣는 것 같으드래 계속해서 말씀만 전해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끔찍한 장면을 보고 환상에서 깼어요. 그다음부터 목사님의 말씀 사이에게 태도가 달라졌다고 그래요. 왜 말씀 들을 기회가 너무너무 짧아요.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얼마나 짧은지 모릅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얼마 안 가면 성경 읽기 힘들 때가 옵니다. 귀가 어두워 말씀 듣기 어려울 때가 와요. 다리가 아파서 예배드리러 나오기 힘들 때가 생깁니다. 곧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듣고 배울 때가 있는 거지요 여러분 말씀 들은 시간을 내셔야 돼요. 유두고가 설교 듣다가 졸다가 떨어져 죽었는데 이유가 있을 겁니다. 아마 도두고는 육신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였을 거예요. 그가 말씀은 사모해서 졸리기고 피곤하지만 집에 가서 자지 않고 그래도 저녁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말씀드리려고 온 것만 해도 믿음이 좋은 사람이지요 그런데 워낙 육신이 피곤한 걸 어떡합니까? 안 졸려고 그가 창문턱에 앉았다고 그랬는데 젊어서 그가 태도가 아주 삐딱해서 창문턱에 앉았다고 보기보다는 등불이 많이 켜져 있는 곳이라 아마 공기가 탁했겠지요.
신선한 공기를 쐬면서 정신 차려서 말씀 듣고 싶은 마음으로 아마 그가 창문턱에 앉았으리라 성경학자들은 그렇게 해석합니다. 그래도 워낙 피곤한 걸 어떻게 그래서 결국은 떨어져 죽었지요 여러분 주일 예배 준비는 토요일부터 하는 겁니다. 토요일 밤 늦게까지 이 일 일하고 테레비 보고 피곤한 채로 그리고 잠을 자고 주일이 오시면 안 좋 오는 게 이상하죠. 사람의 육신에는 한계가 있는 겁니다. 주일 예배는 토요일부터 드리는 거예요. 내일 예배니까 또 예배드릴 때 말씀 듣는 시간이 있으니까. 내가 말씀 듣는 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하니까 내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지 여러분 정말 시간을 내셔야 돼요. 예배드리는 일에 말씀 듣는 일에 시간을 내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가장 깊이 받는 길 하나만 더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실제로 말씀을 삶에 적용해 보는 거예요. 언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가장 깊이 경험할 수 있을까? 말씀 듣고 은혜받은 대로 살아보는 겁니다. 무디 목사님 성경책에는 곳곳에 TNP라고 하는 표시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무슨 약자일까요? 캐스트 앤드 프로브드라고 하는 약자입니다. 한번 이 말씀대로 실적 실험해 봤다. 그랬더니, 말씀이 사실이구나 하는 것을 증명되었다. 그런 뜻이죠. TNP라고 쓴 우리도 똑같은 자세를 가지고 말씀을 봐야 합니다.
말씀은 그저 듣고 배운 것으로 은혜를 받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말씀대로 살아보지 않으면 마치 장작만 패놓고 떼지 않는 장작과 똑같애요. 애기는 임신을 했는데 그만 유산한 것과 똑같아요. 말씀은 그저 아는 것으로는 은혜를 모릅니다. 왜 그동안의 말씀을 많이 듣는데도 말씀의 은혜가 내 속에 감동이 아닐까 실제로 내가 말씀대로 살아보고 말씀이 증명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며칠 전에 우리 교회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어요. 이 부 예배 오늘 참석하셨더라고. 같이 기도도 했습니다. 그분이 젊은이 교회 요즘 설교 주제가 믿음을 실험하고 믿음을 훈련해 보라 그게 젊은이 교회 말씀의 주제예요.
말씀을 듣는 중에 내가 그동안에 믿음을 실제로 실험해보지 않았구나 그래서 내 믿음이 자라지 않았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자기가 믿음대로 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도전하시는 것을 느꼈다는 거예요. 특히 아들이 아토피 때문에 고생을 합니다. 하나님이 고쳐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하나님이 고쳐주실 거야라고 말을 해도 자기가 마음에 확신이 없으니까. 말에 힘이 없고 말을 듣는 아들도 믿는 것 같지도 않더래요. 하나님은 치류의 하나님이시니 그렇게 성경에 분명히 말씀했는데도 믿음으로 적용을 안 하고 있으니 이게 내게 문제구나 약을 다방에서 구해서 발라보고 크림도 사서 발라보고 음식도 다시 조절해 봐도 겨울 되니까.
아이가 온몸에 아토피가 덧나는데 이거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더라는 거죠. 믿음을 써봐야 되겠구나. 그래서 아들을 붙잡고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치료해 주신다 그러셨어 그리고 아들과 함께 금요 성룡 집회 때 왔어요. 그리고 나와서 안수 기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 주님의 손으로 고쳐주십시오. 약도 쓰고 안 해본 방법 다 없지만, 하나님이 고쳐주셔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안수 기도를 받았는데 그리고 약을 발라주려고 아이를 이렇게 옷을 벗겨 보니까, 그렇게 덧나 있던 아토피가 싹 사그로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는 거예요.
야 놀라운 일이구나 그런데 한 번 기도로 깨끗이 고침 받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 안 치유 기도도 항상 그렇습니다. 계속 떼어지는 기도가 필요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매일 저녁에 아이를 붙잡고 기도를 하기 시작을 합니다. 예수님 이 아이를 고쳐 주십시오. 밤마다 아이 몸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아토피를 뿌리째 치료해 주시기를 아토피로 괴로움 주는 악한 병이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가도록 대적하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기도했습니다. 1주일 지나서 깨끗하게 나았어요. 아토피가 있었다는 흔적만 있고 깨끗하게 나았어요. 약을 안 바르고 크림을 안 바르고 며칠을 지났는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얼마나 감동이 되었는지 그 아이가 그렇게 고백하더랍니다.
엄마 나 사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의심한 적도 있었어 부처나 다른 신들과 같은 신 정도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어 그런데 기도받고 아토피를 고친 다음부터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신이구나 진짜 살아계시구나. 하는 것을 이제 알았어. 지긋지긋하던 아이의 아토피가 고침 받은 것도 너무 감사하지만 아이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거죠. 말씀에 진짜 은혜의 감동은 말씀을 그대로 내가 적용해 볼 때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겨우 여러분 이제 한 해가 지나고 새해를 맞습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새벽기도회 그리고 성구영신 집회 꼭 오셔서 2010년을 주의해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말씀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가 떠나서 가나한 땅까지 이르게 된 것처럼 우리도 2010년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이 역사를 주장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은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게도 주신 말씀 그 말씀에 은혜에 더 깊은 자리까지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말씀을 보는 눈도 열어주시고 말씀 듣는 귀도 열어주옵소서 홍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2010년 한 해 우리 할렐루야 찬양대 찬양처럼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 이렇게 아멘으로 영광 돌려드리는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2010년이 놀라운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해마다 첫 주일에 우리 임원들을 임명했습니다. 또 미자릭 교회 선교사님들도 이 부 예배 때 강단 위에 다 올라오셔서 임명을 했습니다. 우리 국내 선교사뿐만 아니고 인도 태국으로 가기 위해서 조미홍 목사님 또 김창염 장로님 전성환 권사님 또 인명을 또 파송을 기다리고도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이렇게 해마다 첫 주일에 임원 임명을 하는 것이 여러분들의 마음의 감격이 되셨습니까?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 자리에 일어나시라 이럴 때 내가 집사 나도 일어나야 돼 아마 어떤 분들 중에는 조금은 좀 짜증스러운 느낌이 드시는 분도 있으실 거예요. 아우 이런 좀 형식적인 건 없으면 좋겠어 그냥 뭐 임명했다고 그러면 되지 이런 분도 계시리라고 싶습니다. 일어날까 말까 그것도 좀 부담스럽고 다른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것도 좀 귀찮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드시는 분들도 틀림없이 있으셨을 거예요. 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감격스럽다 임명하는 시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전혀 느껴보지 못하는 그죠 늘 해마다 첫 주일에 하는 형식적인 임명식이라고 생각하고 임원 임명을 받으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여러분들 4명 없이 예수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거든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예수를 믿으셔서 구원받았다고 한다면, 여러분 모두에게 다 4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4명의 영광을 아는 사람은 참 드꿉니다. 임명식을 이렇게 해보면 그러면 약간은 귀찮아하는 느낌을 받아요. 그리고 그저 일어서든 안 일어서든 별 상관이 없어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만약에 대통령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직임을 주셨다면 아마 절대 그렇게 하지는 않으실 거예요. 뭐 내일이 힘들어서 뭐 이런 말은 입에도 안 나올 겁니다. 그렇죠. 만약에 여러분의 회사에서 여러분이 승진했다면, 그래서 좀 더 무거운 직책을 여러분이 받았다면 아마 일로 인해서 여러분은 축하도 받고 또 아마 기쁨이 넘칠 거예요.
일은 더 많이 하게 됐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4명에 대해서는 왜 그만큼도 생각이 안 가는 걸까요? 사도 바울은 도대체 4명에 대해서 그는 어떤 자세로 4명에 대해서 고백을 했나 24절 말씀을 한번 보시면, 자막이 나올 테니까.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24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십시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4명 곧 하나님의 은혜에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멘 대단하지요 사두바울은 4명을 위해서 내 생명도 더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런 사도 바울이 만약에 어떤 4명 앞에서 임명을 받는다고 해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일로 인해서 감격하고 가슴이 뜨겁고 순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까요? 생명을 바쳐서 4명을 감당하는 사람의 삶이 아름답습니다. 이번 송구영신 예배 때 이종옥 사모님 박보영 목사님 정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너무 짧았 그게 너무 아쉬웠을 정도예요. 한 한 시간 정도 전후에 짧은 시간에 삶의 일부를 드러낸 것만 가지고도 말씀이 끝나고 난 다음 기도 시간에 정말 많은 분들이 울면서 하나님께 엎드렸어요. 그 4명 생명 바쳐도 아깝지 않은 4명의 길을 가는 사람의 삶의 모습은 너무너무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모두에게 사도바울처럼 내게 주신 4명을 위하여 나는 내 생명조차 귀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이런 고백이 하 주님의 은혜 가운데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안에 오늘 4명에 대해서 새로운 눈을 열어주시고 그리고 4명의 축복을 여러분이 보게 해 주실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베소 교회 장로님들을 밀레도라는 항구를 불렀어요. 사실은 에베소에 가서 만나고도 싶어 했지만,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너무 바빴기 때문에 도무지 에베소로 가지 못하고 밀레도 항구로 나오라 그래서 거기서 만났습니다. 사도바울이 상당히 지금 걸음이 바쁩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걸음이 왜 그렇게 바쁠까 22절 23절을 읽어보면 좀 이해가 안 돼요.
성령님께서 계속해서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너는 결박을 당하고 환란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을 계속 주신다는 겁니다. 그 사도바울이 결박이 있고 환란이 있는 예루살렘에 빨리 가려고 지금 서두르고 가고 있는 거예요. 아니 빨리 가려고 서두를 일이 따로 있지 지금 환란당한다는 예루살렘으로 뭘 그렇게 빨리 가요 에베소교의 장로님들을 만나야 할 일이 있다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 가지고 에베소로 쭉 빠졌다가 거기서 며칠 볼일 보고 그렇게 가는 길이 되어도 사람의 심정으로는 충분히 그럴 것 같은데, 환란당한다는 예루살렘에 빨리 가려고 그렇게 만나보고 싶은 에페소교의 장로들 밀레노라고 하는 항구에서라도 만나자 그래서 불러내는 사도바울의 심정 이게 4명자의 삶이에요.
22절을 보면 성령의 매여라고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완전히 성령께 사로잡혀 있는 겁니다. 성령에게 사로잡힌 4명자는 환란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문제가 되질 않아요. 순종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아브라함이 내 독자 이삭을 내게 잡아 바치라 언제 바치라고 안 했습니다. 한 달 뒤에 1년 내에 조건 붙이지 않으셨어요. 근데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갑니다. 아니 일찍 일어날 일이 따로 있지 아들 잡아서 하나님께 바쳐야 되는 명령에 순종하는데 뭐가 그렇게 급해서 일찍 일어납니까 4명자는 그렇습니다.
자 사도바 우리 에베소 장로님들을 만나는 이유는 당신도 4명 위에서 예루살렘에 가지만 에베소 교회 장로님들도 4명으로 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에베서 교회에 장로 몇을 세워서 에베서 교회를 담당하도록 맡겼습니다. 28절에 보면,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이제 사두아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면 이제 결박당해서 이 에베소리는 다시 올 가능성이 없어요. 자 에베소리는 이제 2장로님들에게 완전히 맡겨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임명식을 할려고 장로 임명식을 할려고 사도 바울이 자 에베소 장르들을 부른 거지요 성도들 중에 이렇게 교회에서 어떤 직임을 맡겨주는 일에 대하여 몹시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이 있으십니다. 교회에서 무슨 직분을 드리거나 직책을 드리거나 하나님께서 뭘 일을 하라고 하면, 뭐 한사코 싫어하시는 분들이 있으세요. 심지어는 어떤 분들은 나 집사로 세우면 딴 교회 가겠다고 협박하는 분도 계세요. 교회에서 맡겨둔 직분 먹고살기도 힘든데 지금 가정일도 힘든데 교회 일 이건 끔찍하게 생각이 드는 거죠. 힘들다는 생각만 하는 거예요. 4명의 축복을 모르니까 그런 거죠. 여러분 힘들어도 축복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 일하는 게 그렇죠.
일하는 거 힘들잖아요. 그러나 일하지 말라고 해보세요. 그러면 그건 정말 저주 같은 거지요 아이 낳아 기르는 거 힘들지요 그래서 요즘에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아이 낳을 수 없는 것은 저주지요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아이 낳는 게 축복이란 말입니다. 공부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학생들에게 공부하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벌 주는 것과도 같이 여겨져요 그러나 형편이 어려워서 공부할 수 없게 된 아이가 될 때 그때 장학금 마련해서 너 공부하라 그러면 눈물 흘리면서 감사하지요 힘들다고 다 우리에게 불필요한 게 아닙니다. 힘들어도 축복이 많지요 4명은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것이에요. 하나님이 당신의 피로 사신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어떤 일을 맡겨주는 일을 정말 귀하게 여기셔야 됩니다. 소홀히 생각하면 그건 하나님 앞에 설 때 가장 후회되고 고통스러운 일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4명이라 24절에 그런 표현을 썼어요. 자기 4명은 주 예수님께서 주신 거라는 거죠. 14권사 장로 다 주 예수님께서 주신 4명입니다.
대통령 출신 직책도 회사 사장이 내게 맡겨준 일도 그렇게 귀하고 힘들어도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그렇게 여길 거라고 한다면, 만복의 근원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4명은 이건 정말 자랑스러운 거죠. 이건 정말 축복이죠. 4명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 하나님이 주신 모든 힘을 다 엉뚱한 데 써버리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는 순간이 두려운 순간이 되는 겁니다. 요즘 헬스장 가면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만 운동하는 게 아니고 몸짱 열풍이 불어있는 걸 봅니다. 몸을 만든다고 그러네 몸을 만든다고 그러네 몸을 만든다. 그분들 정성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앞에 갈 때 어떻게 할 거냐면 하나님께서 물어볼 것 아닙니까 너 뭐하다가 왔냐 못 만들다가 왔습니다.
그래 한번 보자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이게 뭡니까? 도대체 그러니 여러분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되는 거예요.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의 4명 믿음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요 정말 믿음이 없으니까. 하나님이 준 축복을 축복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4명 귀한 줄 아는 사람도 4명 앞에서 주저하는 분들이 있어요.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 또 정말 겸손한 분들 그런 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있으세요. 하나님이 주신 삶이 얼마나 귀중한데 나 같은 사람은 감당을 못 합니다. 겸손한 거지요 나는 부족해서 도무지 그거 감당을 못 합니다. 어떤 분들은 책임감이 강한 분도 그래요.
이왕 하려면 잘해야 되는데 내가 가정일도 직장일도 이거 교회 일까지 나는 도무지 잘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런 분들 중에는 그동안에 교회 생활하면서 직분이 있다고 하는 분들 통해 실망하고 그런 분들 때문에 교회가 오히려 어지러워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상처받은 분들이 많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 같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못하면 못하는 거지 할 수도 없으면서 괜히 하겠다고 명예욕에 사로잡히는 거 저는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는 못 하겠습니다. 이렇게 주저하는 분들이 계세요. 정말 겸손하고 또 책임감 분명하신 분이지요 그러나 그가 겸손하고 책임감이 있는 거는 사실이어도 한 가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4명을 도대체 무슨 힘으로 감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믿음 끊이 없는 사람이에요. 자기 능력으로 하는 줄 아니까 그러니까 나는 부족해요. 나는 자격이 없어요. 자기 능력으로 하는 줄 아니까 나는 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돼요. 이렇게 말하는 거죠. 주님이 하시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는 것인데 그걸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위하여 교회 장로를 세우신 것이 얼핏 보면 아주 무책임해 보입니다.
29절 30절 말씀에 보면,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사도바울이 지금 에베소교의 장로들에게 이제 심각한 어려운 문제가 에베소 교회에 일어나게 될 것이라 외부에서 오는 핍박이 문제가 아니에요. 교회 안에 무서운 이단을 가져 들어오는 거짓 선지자들 거짓 지도자들이 교회 안에 팍 일어나게 될 것이란 자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우리 에베저 교회에 있으면서 집사도 하시 5권사도 하시 5장로도 하시오. 그러면 할만 나겠는데 사도 봐올 당신은 떠나가고 그리고 3년 정도 성경 공부한 사람들이에요.
그들에게 에페소리 교회를 영적으로 지키라 에페소 교회의 교인들을 영적으로 보호하고 제자 삼아라 신학교라도 있어서 신학교라도 가서 뭐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모르겠어요. 당시에 신학교가 있었나요? 성경책이라도 있으면 성경책이라도 보면서 이게 옳은가 그런가 할 만하겠는데 당시에 성경책도 없어요. 맡겨도 되는 겁니까? 사두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몇 장로들을 그렇게 세워서 책임을 맡기는 것이 그게 옳은 겁니까? 맡기는 사도바울도 그렇다고요. 장로로 책임을 맡은 사람들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사도방울도 다 알지요 에베서교의 장로들과 같이 끌어안고 울었다 그랬어요.
단순히 헤어지는 석별의 정이 아쉬운 게 아닙니다. 이 사람들에게 교회의 중한 책임을 맡길 때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너무 잘 아니까 또 그 에베소 교회 장로들이 얼마나 연약한 자들인가를 너무나 잘 아니까 사도바울이 울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사도바울이 무책임한 겁니까? 아니었어요. 사도바울은 에베서 교회가 영적으로 어려워질 것도 다 알았고 그 에베서교의 장로들이 얼마나 연약한가 하는 것도 너무나 잘 알았지만 믿는 것이 하나 있었어요. 사도바울이 정말 믿는 것이 하나 있었어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이제 에베소를 떠나도 예수님은 에베소를 떠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에베수 교회 장로들과 함께 늘 같이 계시다는 사실 이 사실 하나는 분명히 믿었어요.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스교의 장로들을 세울 수 있었던 겁니다. 32절 말씀을 한번 보실까요?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예수와 밑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아멘 사도바울은 장로들을 보고 직임을 맡긴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믿고 장로를 세운 거예요. 지금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4명을 맡기시는 것은 직분을 맡기시는 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어서 그런 여건이 되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주위의 4명에는 더 문제가 생깁니다.
무능해서 문제가 아니라니까 저는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게 오히려 자격이라니까 저는 일할 만한 조건이 안 됩니다. 그게 오히려 하나님이 중요하게 보시는 자격이라니까 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한번 해볼 만합니다. 하나님이 더 골치 아프신 거예요. 유능한 게 더 문제라니까 주위의 일을 할 때 유능한 게 더 문제예요. 최근에 우리 교회 세 가족으로 오시는 분들을 만나서 어떻게 이 교회를 나오시게 됐습니까? 그렇게 물으면 목사님의 설교 때문에 제가 이 교회로 나오기로 했습니다. 그런 분들이 있으세요. 전에는 그런 이야기 들으면 기뻤어요. 속으로라도 은근히 야 내가 설교를 잘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지 지금은 두려워요 예수님을 알고 더 깊이 알수록 목사님의 설교 때문에 목사님의 설교 때문에 그게 저를 너무나 두렵게 해요. 예수님이시거든요. 성도들이 정말 정말 바라보아야 될 분은 예수님 그분이시거든요. 성도들이 정말 들어야 될 음성이 있다면 예수님 그분의 음성이거든요. 그런데 어떤 경우에 목사를 통해서 주위의 음성을 듣는 정도까지는 좋겠는데 나중에는 목사가 예수님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해 버리게 된다. 이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거거든요. 오히려 목사인 제가 주님을 가로막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것은 저에게 두려운 일이 됐어요. 사람이 유능하다는 것은 어떤 때는 영적으로 위기가 됩니다.
노픈드 송익교회 김동호 목사님 그분도 만나서 말씀을 나눠보면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이 한번 교회에서 빌딩을 하나 마련을 해야 되는데 은행에서 30억 정도 대출을 받기로 교회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뭐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했대요 교회 교세라든지. 모든 형편이 뭐 은행에서 너도 나도 대출해 주겠다고 하지 대출 못 받을 거라는 생각을 안 했는데 두 번이나 대출 거제를 받았습니다. 은행 담당자를 만났어요. 왜 그런가 하고 물어봤습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그냥 해주는 게 아니죠. 다 와서 조사합니다. 저희 교회도 대출받을 때 목사의 건강까지 다 체크해요.
근데 은행에서 판단해 보니까, 이 교회는 완전히 김동호 목사 한 분의 영향력으로 이만큼 성장한 교회라는 그래서 오히려 교회를 믿기가 어렵다는 거 김동호 목사님 이분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교회는 한순간에 다 무너질 교회다 이렇게 판단이 들었다는 것 그래서 대출 불가 이렇게 결정을 했다는 거죠. 그 목사님이 충격을 받았어요. 사람들이 나 설교를 듣기 위해서 교회를 이렇게 오는 것이 이것이 교회 위기구나 하는 것을 그때 깨닫고 그때부터 당신의 영향력을 교회에서 다 빼버리는 작업을 했답니다. 안식력 갑자기로 떠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1년 동안 교회를 비우는 거지요 안식년 떠난 첫 주일에 주일 출석인은 1000명이 줄었습니다.
큰일 난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이러다가 교회 무너지나 그때 마음의 생각에 만약에 내가 빠져서 이렇게 교회가 무너지는 거라면 차라리 지금 무너지는 게 낫다 이제 다시 급히 돌아가서 다시 회복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있겠네요. 작년에 교회를 내수로 분립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담임 목사 자리에서 내려오셨어요. 올해부터는 그나마도 한 달에 세옥 주는 담임 목사 계시지 않는 교회 가서 설교를 하고 한 달에 한 번만 네 교회를 돌아가기로 그니깐 한 교회가 넉 달에 한 번 정도 1년에 그저 한 세 번 정도 김동원 목사님 설교를 듣는 교회가 돼요. 왜 이렇게까지 하나 목사님의 뜻은 하여튼 한 사람의 영향력 속에 교회가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여야지 하는 거예요. 제가 목사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해서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목사님의 기본 동기는 충분히 공감해요. 정말 그래야 되는 거죠. 그 목사님 지난 주일 설교 들으니까. 너무너무 당신 자신에게는 놀라운 은혜를 하나님이 주신다는 겁니다. 담임 목사직도 다 내려놓고 그리고 주일 설교도 그저 석 넉 달에 한 번씩 교회에 가서 설교하고 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영향력을 다 빼버렸는데 하나님이 당신네 중심에 너무나 놀라운 힘을 부으신다는 거예요. 그게 뭘까? 궁금해요. 만나면 꼭 한번 여쭤보고 싶어요. 근데 마음이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사도방울도 꼭 그랬었고 사드바울이 그랬어요. 빌리버서 3장 여러분도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빌리버서 3장 7절부터 9절까지 한번 같이 읽어보십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술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사도바울이 다 배슬물처럼 버렸어요. 그러고 얻은 축복이 예수님이었어요. 예수님을 더 발견한 거죠.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었어요. 여러분 예수님이신 거예요. 여러분들이 4명 감당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예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뭘 믿고 당신의 피로 값준 교회를 맡겼을까요?
도대체 우리가 뭘 할 수 있길래 이 거룩한 교회에 임원이 될 수 있었을까요? 선교사가 될 수 있을까요? 목사가 될 수 있을까요? 목사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능력은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그분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시니까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믿고 그리고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밖에 없어요. 그때 예수님은 정말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는 것과 말씀으로 지금도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4명 감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꿈도 못 꿀 일이에요. 4명을 감당하는 자만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께서 영국에서 목회하실 때 그때 영국 런던에 너무너무 설교 잘하는 목사님들이 많으셨어요.
미국에 있는 목사님들이 교회 탐방을 영국 런던에 왔습니다. 주일 아침에 조세 파커 목사님이 심오하시는 씨티 템플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2000명 정도 이상 모이는 큰 교회 예배를 드리는데 너무너무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설교 끝나고 예배 끝나고 나오면서 조세 파커 목사님은 정말 설교를 잘 하시는구나 그렇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을 했습니다. 자 저녁 예배는 이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메트로폴리타는 테버너클 교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시티 템플 교회보다 더 큰 예배당 교인 수는 배나 더 많은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어요. 스펄전 목사님은 웅변가라고 할 만큼 목소리도 좋고. 그리고 말씀 전하는 능력이 탁월하신 분입니다.
설교를 듣는데 정말 말로만 듣던 대로 스폴전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너무 좋은 거죠. 그런데 설교를 듣다가 스폴전 목사님의 목소리나 웅변술이나 다 잊어버렸어요. 미국 목사님들이 조세 파커 목사님하고 찰스 스펠즈 목사님하고 비교하는 것도 다 잊어버렸어요. 예배당의 크기 교인들이 모인 거 다 잊어버렸어요. 예배 끝나고 난 다음에 나오면서 미국의 목사님들이 이구동성을 하는 이야기가 예수 그리스도는 정말 위대하신 9주이시다 그렇게 고백하고 나왔다는 거예요. 제가 글을 읽고 목회 어떻게 해야 되는가 주님께서 도대체 목사에게 뭘 원하시는가 하는 걸 알았어요. 목사에게로 끌면 안 된다. 말이야. 교인들에게 예수님 그분을 바라보게 해드리는 것이 목사의 일이에요.
저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의 장로들에게 고백했던 그대로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임원들 4명자들을 예수님과 은혜의 말씀에 부탁드리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들을 예수님 그분에게로 연결시켜 드리고 싶어요.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것 그거 하나를 분명히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리고 싶어요. 제가 있든지 없든진 아무 영향이 없어요. 그렇게 되시는 여러분 되기를 한절히 원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장로님들을 다 모아서 밤낮 울면서 3년 동안 가르쳤다고 그랬습니다.
31절에 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워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년 동안 도대체 뭐 때문에 눈물로 그렇게 가르쳤을까요? 그 교인들이 훌륭한 일꾼들이 되어서 사도 바울이 목회할 때 큰 힘이 되는 거 위해서 그랬을까요? 목회자들의 마음속에 그런 유혹이 있습니다. 목회 열심히 하면서 교인들이 빨리 일꾼으로 자라서 나중에 큰 일꾼 되어주면 좋겠다. 사도바울은 그렇지 않았어요. 사도바울은 이제 떠날 겁니다. 사도바울의 마음에 있는 안타까움 간절함은 오직 않아요.
내가 떠나더라도 내가 에베소 교회에서 떠나더라도 교회는 든든히 서고 그 교회 장로들은 든든히 서고 끝까지 주의 일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예수님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더하려고 그 예수님과 온전히 교제하고 예수님이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 세우는 일이 사도바울의 간절한 목적이었어요. 밤낮 울면서 가르쳤다고 그랬어요. 여러분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바라보실 분은 예수님 그분이세요.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4명 주셔서 가정일도 잘하고 직장일도 잘하고 주님 주신 4명은 더 잘하고 그런 사람으로 주님이 세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능히 하실 분이십니다.
사도바울은 말씀을 가르칠 때 강의실에서 가르치지만 않았다고 그랬습니다. 그는 행동으로 삶으로 가르쳤다고 그랬어요. 18절 말씀에 보면,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사도바울은 자기가 행하였던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어요. 여러분도 다 보지 않았습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말을 들은 게 아니고 내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살았는지를 여러분이 다 보시지 않았나요? 4명은 말로 하는 게 아니고 삶으로 하는 거거든요.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몇 가지 쭉 언급 하다가 특히 돈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합니다.
33절부터 35절까지 보면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의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준 것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 사도바울은 에베서교의 장로들에게 정말 마음에 소원하는 것은 물질 문제에 대한 시험에서 이기는 자가 돼야 된다는 거예요. 겨우 여러분 이거 정말 명심해야 합니다. 때때로 이런 분들이 있으세요. 그저 교회 교인들을 내 비즈니스에 좀 같이 이렇게 활용하면 교회도 좋고. 나도 좋고. 그렇지 않겠나 여러분 무조건 주는 거는 좋아요. 하나님께서 핏값 주고 사신 교회입니다.
교회 통해서 조금이라도 이익을 남기려고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다 채워주고 갚아주십니다. 성도들 절대로 비즈니스에 관여시키지 마세요. 무슨 일 투자하면 돈 더 많이 벌겠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마세요. 마귀가 반드시 일에 시험합니다.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핸 사람도 나중에는 반드시 일로 시험되게 돼 있어요. 돈 문제가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는 세상입니다. 마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냥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 있다. 그렇게 사는 자세를 가지셔야 돼요. 작년 말에 교회 안에 재정적인 엄청난 어려움이 하나 있었습니다.
교우들 사이의 거래 문제 때문에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러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말 삶으로 주의 일을 감당해야 되는 일 중의 하나가 사랑입니다. 교회 직분 감당하는 문제 때문에 교회 4명 두려워하는 교우들이 계세요. 목사님 사람 말이 무섭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면 또 무슨 말을 들을까? 그게 무섭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교회에서 누가 봉사하고 섬길 때 절대로 비판하거나 뭘 가르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주름을 위해서 섬기는 것이 귀한 거예요. 아직까지 부족해 보이면 주께서 그를 성숙시켜 주실 겁니다. 격려해 주고 축복해 주는 거 이상은 정말 조심하셔야 돼요.
교회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설쳐요 사람을 죽이는 거지요 아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앞장서니까 조금 보기가 그렇네 정말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거예요. 내가 사랑하니까 충고해 주는 말인데 여러분 그것 때문에 밤에 피를 토한 사람이 있어요. 정말 주님이라면 그랬어. 내가 말을 들으면 어떨까 정말 생각하고 그러면 아마 주님이 말하지 말게 하실 거예요. 기도만 하게 할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또 하나 사람 말 무서워서 아유 나 이제 봉사 안 할렵니다. 이거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하는 걸 아셔야 돼요. 하나님 앞에 가섰을 때 나는 너에게 4명을 주었는데 넌 어째 그렇게 아무 일을 안 했느냐 사람 말이 무서워서 그랬어요. 사람 말이 하도 말이 많은데 하나님도 아실 거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그래 이해가 된다. 그러실까요? 사람 말이 무서워서 하나님 주신 명령은 감당을 안 합니까? 어떤 게 더 무서운데요. 하나님 일 감당하는 것이 훨씬 무섭죠 여러분 사람 말을 들었을 때 옳은 말을 하시는구나 그러면 듣고 회개하고 바로 서면 되는 거죠. 만약에 저분이 나를 잘 몰라서 그러시는구나 그러면 그거로 충분한 거예요. 왜 하나님은 아시니까 하나님 앞에 갔었을 때 얼마나 칭찬받을까? 너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듣고도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충성했냐 오히려 다른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축복인 거예요. 깨닫고 보면 그게 상급인 거지요 왜 사람 말이 무서워서 일을 안 해요.
하나님 주신 4명인데 성도 여러분 삼행의 축복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주위의 일을 소홀히 하니까 하나님께서 내일을 어떻게 귀하게 여기실 수 있겠어요. 2010년 4명의 축복 다 받으시는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만 붙잡으세요. 이제 새해 첫 주일 성찬식을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여러분이 온전히 하나 되는 시간 이 성찬을 통해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성찬의 축복을 주시도록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